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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 Posted by 민창 2010.03.19 02:21

라디오

라디오를 언제부터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사오는 tape 와 CD 를 들으면서 나름 음악을 듣는 어린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을 줄줄 외우고 신해철의 굿바이 영어 랩을 하나하나 한글로 받아 적어가며 불렀던 시절이다. 
그러다 몇년 후 집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망가져가는 나만의 까만 카세트를 하나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때인거 같다. 
테잎을 듣기에는 카세트가 너무 구렸고 잘 돌아가지 않아서 라디오를 틀어 보았다. 
라디오 역시 안테나가 부러지고 없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어느날 쇠젓가락 한짝을 장난으로 안테나 구멍에 꼽으니 라디오가 잘 잡혔다. 약간의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들려오는 디제이 목소리와 음악들.
그때 부터 가끔 나는 젓가락을 꼽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잠 들곤 했다.

Radio Daze
Radio Daze by Ian Hayhurs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어릴때 부터 나의 취침시간은 거의 밤 두시경이었는데  그 시간이면 라디오의 황금시간대. 잔잔한 목소리의 디제이가 읽어주는 사연과 노래들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그전부터 들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디제이는 당시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던 성세정 아나운서였는데 9시 뉴스이후에 힘차게 스포츠뉴스를 전하던 아나운서가 밤 12시만되면 로멘틱한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주었다. 내가 라디오를 들으며 가장 처음 푹 빠졌었던 노래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라는 노래였다. 봄여름가을겨울 1집에 수록된 아저씨들의 노래였는데 어린 나이에 그 노래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약간은 거친 보컬이 뱉어내는 '세월 흘러가면 변해 가는건 어리기 때문이야' 라는 가사가 왜 그렇게 가슴에 꽂혔는지. 얼마전 새벽에 집으로 오는길에 흥얼거리던 그 노래에는 아직 나의 어린시절이 그렇게 남아있었다. 
중 2학년때던가, 누군가 라디오에 나와서 '김동률씨가 드디어 솔로 1집을 들고 나왔네요. 정말 좋습니다.' 라는 말을 하며 김동률의 1집을 소개했다. 나는 김동률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냥 갑자기 그 음반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수의 음반을 내 돈으로 샀던것이 서태지 4집이후 두번째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불러보았던 김동률의 '배려'는 그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다. 그 이후 오늘까지 나는 수백 수천번이 넘도록 그의 노래를 들었다. 사실 아직 나는 그의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잘 모른다. 그냥 들으면 좋은 그의 노래 역시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다. 

갑자기 라디오 이야기를 꺼낸것은 내가 고등학교때부터 때때로 들어오던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라는 프로그램이 다음주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는 아쉬운 소식을 방금 들었기 때문이다. 3부를 시작하며 성시경의 '두 사람' 이 흘러나오면서 그녀의 이른 인사가 흘러나왔다. 매일 매일 듣던 애청자는 아니었지만 10년을 변함없이 이 시간대를 지켜준 프로그램인데... 10년을 들으면서 아직 사연도 한번 못보내 봤는데 이제 그 좋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이별이라는것이 어떤 상황에서나 그렇듯 참으로 아쉬우면서도 또 다른 만남이 있는 것이고 가끔 생각나 추억하고 그렇게 웃을수 있는 것이지만 그 순간만큼 참으로 아프고 모든게 끝인듯 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 나를 지켜주던 늦은밤의 두시간이 모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달콤한 음악 상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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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에릭 2010.03.26 01:04

    독서실에서 매일같이 스윗뮤직박스를 듣던 생각이 나네요. 대학와서는 잘 듣지 못했는데..
    진짜 그 달콤한 정지영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공부하는게 정말 좋았었는데..
    그 뒤의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은 진짜 막장이였지만.ㅋㅋㅋㅋ